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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 한국전 참전용사를 기리며 8 전쟁영웅들이 눈에 띄다

그들은 한달동안 전투를 진행했다. 8월의 폭염속에서 빗발치는 총탄이 9월까지 지속되었지만, 한반도의 남쪽까지 밀린 유엔군은 굳건함을 유지하였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북한군은 압박을 가했지만 대한민국의 방어자들은 후퇴가 지속되고 있는 수개월이 지난후 굳건함을 유지하였다.

미 제2보병사단/한미연합사단 사학자인 윌리엄 M알랙산더 예비역 대령은 “낙동강 전선 전투는 독특했다,” 며 “크로마이트 작전 (인천상륙작전)과 연계하여 유엔군이 후퇴상황에서 빚어낸 큰 승리였다.” 고 말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미2사단 전사들은 본 투쟁속 지원을 감행하였다. 수십년 후 많은 사학자들이 말하는 “부산 전선 전투”중 전사사단의 총 희생자 수는 전사자 1,120명 그리고 부상자 2,563명 및 69명의 실종자를 기록하였다. 이들중 여덟명이 주목을 받았다.

본 사단 소속이었던 여덟명의 장병은 1950년 9월의 전투중 그들의 전공을 인정받아 명예훈장을 수여받았다. 모든 극한 상황으로 몰아부치는 끔찍한 전투 속에서 여덟명은 한국전 전세를 바꿔 놓았던 아주 힘든 싸움의 승리를 견인차하게 되었다.

알랙산더씨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의 그들의 전공으로 명예훈장 수여자가 된 여덟명은 무언가 대단한 것입니다,” 며 “하나의 전투라고 표명되지만, 그것은 그렇치 않습니다. 이것은 아주 넓은 지역에 펼쳐져있는 연속된 전투인 것입니다. 본 여덟 장병의 전공에 대한 훈장 수여는 빈번히 일어나지 않는 그 무엇인 것입니다.” 고 말했다.

알랙산더씨는 본 여덟 장병의 영웅적 행동으로 미 제2보병사단이 약화된 북한군 전선을 뚫을 수 있도록 하였고 적군을 상대로 미 제8군사령부를 만주 국경까지 진격하게 만든 역공을 이끈 요인이 되는 반격을 가능하게 했다고 강조했다.

미 제2보병사단/한미연합사단 사단장인 스캇 맥킨 소장은 9월 22일 대구에서 303고지 전투 기념식에서 새로이 건립된 기념탑과 함께 본 여덟 명예훈장 수여자들과 그들의 전우들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맥킨 소장은 “바로 이곳에서 복무하며 1950년 9월 2일 탈출 도중에 이곳에서 부상당한 삼촌을 둔 저에게는 이곳은 개인적인 곳이기도 합니다,” 며 “모든 대단한 참전용사들이 이뤄내고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는 그런 희생입니다.”고 말했다.

맥킨 소장은 일리노이 주 시카고에서 한반도로 상병의 계급으로 미 2사단 소속으로 참천하게 된 1953년 이후 처음으로 다시 방문한 한국전 참전용사인 하워드 발라드씨를 만났다. 당당한 자세인 발라드씨는 대구에서 한미 파트너들이 함께 모여 운명적인 9월과 전쟁 전반에 걸쳐 정말 치열하게 싸운 장병들을 기리며 경의를 표했다.

미2사단 장병들의 모든 계급들이 부산 전선 전투 중 명예훈장 수여자들 사이에 나타나 있었다. 장교부터 부사관, 몇몇 일병들부터 중사계급까지, 중위부터 상사까지, 사단내에서 여덟 전사들은 끈질긴 적들이 그들의 주둔지를 뚫기 위한 시도중인 상황에서 전세를 바꾸는데 공헌하는 길을 찾았다.

적 포화를 피해가며 적진을 정찰하여 전투를 도왔고 그 와중에 부상까지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우를 위해 물을 회수해왔던 미2사단 9보병연대 소속 죠셉 R 오렛트 일병 그리고 그의 다섯 전우를 구하기 위해 수류탄에 몸을 던져 폭발을 몸으로 막아낸 미 2사단 9보병연대 소속 데이비드 M 스미스 일병과 같은 장병들로 인해 전투 초반 놀라운 활동들이 보여졌다.

알랙산더 씨는 “오렛트 일병은 19세의 나이로 그가 한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의 자유를 위해 그리고 그가 한번도 말을 건내보지 못한 나라의 국민을 위해 싸웠습니다,” 며 “그의 행동은 그의 이름을 본딴 Operating Outpost Ouellette을 이끌었습니다. 전사당시 19세이며 이러한 공헌을 한 그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고 말했다.

미 2사단 72 탱크대대 소속 어니스트 R 코우마 상사같은 리더들은 모든 예상치 못한 상황속에서 싸움을 진행했다. 적들로 둘러싸여져 있으면서 코우마 상사는 홀로 남은 그의 탱크로 적의 진입을 막아냈고 그와 그의 부하들을 둘러싼 적을 사살하기 위해 그의 차량 후면에 50구경 기관총을 장착하면서 적들에게 노출되는 위험에 처하기도 했다. 기관총의 탄환을 모두 소진한 후 코우마 상사는 그의 탱크와 부하들로 부터 적들을 막기 위해 그의 권총과 수류탄을 사용하였다. 코우마 상사는 결국 9시간동안 치열한 전투후 우호진선까지 이동하였으나 곧바로 재공급 받고 그의 부하를 이끌고 전장으로 다시 진격하였다. 

전투가 게속 진행되가면서, 트레비스 E왓킨스 상사와 같은 리더들은 그들의 전우들이 승리를 쟁취하는데 일조하기 위해 극단의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였다. 왓킨스 상사는 그의 작은 부대를 기관총 사격으로 꼼짝 못하게 만들고 수류탄으로 끝내버리려는 시도를 하는 북한군의 공격에 맞서 싸웠다. 그가 그의 병사들을 죽이려는 자들을 공격하면서 왓킨스 상사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으나 죽음의 고통속에서 전투를 계속하였다.

하반신 마비임에도 왓킨스 상사는 그를 수송하는 것이 지친 그의 부하들에게 큰 짐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고 그의 부하들에게 그와 관계없이 분산하라고 지시했다. 왓킨스의 행동으로 그가 그의 진지를 지키며 적군 5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공을 올리게 되었다.

부하를 피신시키도록 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선택을 한 소대장인 미 2사단 38보병연대 소속 프레드릭 F 헨리 중위도 역시 영웅적 행동을 보였다. 당일 압도적인 수적 우위의 공격을 받으면서도 헨리 중위는 전략상 중요한 능선에 위치한 진지를 유지하기 위해 부하들을 독려하였다. 전투가 점점더 치열한 양상으로 진행되면서 헨리 중위는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전투에 임하였다. 헨리 중위는 그의 부상을 가장 마지막에 알렸고 퇴각 도중 사망하였지만, 부하들의 무기와 탄환을 그에게 주어 부하들이 탈출할 수 있도록 막아 주는 역할을 하였다. 헨리 중위는 적들에게 둘러사이기 전 마지막까지 보유하고 있던 탄환 끝까지 사용하였고 그의 용맹함은 그의 부하들이 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러한 희생은 전방을 따라 더해만 갔고 유엔군이 재정비하여 공급선에 걸쳐 퍼져있는 적들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 이 전투로 미군은 총 12,987명의 사망자 그리고 12,508명의 부상자 및 2,701명의 실종자를 기록했고 401명의 포로를 확보하였다. 한국 동맹군들도 작은 한반도를 방어하는 도중 약 4만여명의 희생도 기록하였다.

9월 18일 마지막 전장의 발포 후, 유엔군은 수 주전 잃었던 영토를 탈환하기 시작하였다. 북한군은 굳건한 적이 새로운 생명을 찾으면서 중국내 그들의 동맹군들이 있는 선으로 계속 퇴각하였고 낙동강 전선의 확보로 인해 가속화 되었다. 여덟명의 미 제2보병사단 전사들이 그들의 전우와 동맹군 그리고 두 국가를 위한 싸움이었다.

  

2017년 09월27일 08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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